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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itor’s PICK]기록자의 수기

기록. 이재윤

2024.12.05

‘계엄해제 독재타도’
어떤 날이 있었다. 한 사람의 입에서 내뱉어진 몇 단어, 몇 문장이 나-우리를 패대기치고-권리를 박탈한. 어떤 날이 있었다. 한 사람의 날 선 감정과 분노가 하나의 집단, 나아가 이곳의 모든 사람에게 단숨에 화마로 번진. 어떤 날이 있었다. 한 사람이 홧김에 저지른 일이, 다른 이들의 깊은 두려움과 슬픔을 뒤적여 떠오르게 만든. 글 속에 웅크리고 숨는다. 그 안에는 두려움이 있다. 슬픔이 있다. 이 슬픔은 경험하지 않은 것으로부터 온다.
다음날 아침, 국회 정문 앞에 다다랐을 때 입구 앞은 이미 그곳을 지키고 있는 인파들과, 각종 확성기와 마이크로 외치는 연설, 구호 소리로 혼잡했다. 정문 바로 앞까지 걸어가니 완강히 닫힌 흰 철제 대문 안쪽으로 형광 제복을 입은 경찰들의 이목구비가 보였다. 그들은 바싹 문으로 다가 와 서서, 문에 접근하는 직원들에게 국회로 들어오는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그중에 한 남자와 눈이 마주치고, 사정권으로 내가 더 가까이 다가가자, 그는 의원회관 쪽 회전문으로 들어오라고 설명했다. 나는 그의 말대로 좌측으로 돌아, 국회의사당 측면에 있던 회전문으로 거의 한 줄로 서서 출근하는 직원들 틈에 끼어 국회 내부로 들어왔다.
어떻게 된 일일까. 나는 2층 식당에 들어와 앉아 아침을 먹으며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흩어져 아침을 먹고 있던 주변 직원들의 표정을 살피기도 했다. 지하철에서 간밤에 있던 비상계엄령으로 잠을 한숨도 못 잤다고 크게 소리치는 남자도 있었다. 그는 홀로 출구를 향해 주억주억 걷다가 도중에 멈춰 서더니 옆을 지나던 행인에게 6번 출구가 어디냐고 물었다. 그는 다시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온 길을 재차 확신하며 에스컬레이터를 오르고 멈춰 서고를 반복했다. 다시 한번 행인들 사이에서 큰 소리로 바로 윤석열을 향해 개새끼야! 라고 외쳐야 했기 때문이다. 그대로 그 남자는 경찰들이 소규모로 제각기 삼각형의 깃발을 들고 도열해있는 국회 앞 교차로로, 마찬가지로 잠을 설쳤을 인파가 이미 운집해 있는 정문 앞으로 나아가면서 “윤석열을 내란죄로 구속하라!”고 크게 외쳤는데, 나는 도열한 형광 제복의 경찰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 사이의 간격을 생각해볼 때 매우 조마조마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곳은 이미 확성기를 들고 경찰이 쌓아놓은 강화 플라스틱 벽 위로 올라 ‘윤셕열을 체포하라!’고 외치는 한 여자를 필두로 어제의 여운이 이어지고 있었다.
무엇을 알아서 그렇게 하겠습니까? 장담컨대 아무것도 알 필요가 없습니다. 이 안에 감정 하나 만, 그거 하나면 됩니다. 뭐가 문제입니까? 더 무엇을 잃을 게 있습니까?
어디에서나 언급되는 단어 중 하나가 헌법이다. 이 헌법이 무엇이길래 모든 주장의 ‘근거’로서 권위를 얻고 있을까?

2024.12.06

직접 본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여전히 모든 사건은 우리 눈 밖에 있으며, 사건으로 나아가는 길은 무수히 쪼개지고 나뉘어 있다. 이런 세상에서는 더욱 무엇인가를 목격하고 기록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을 기록할 수 있을까.
현재 이곳 국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있다가 없어지고 또 있다가도 다음날 되면 사라지는 모든 흔적이 여전히 수많은 글자와 지면, 사진과 영상으로 정보로 퍼지고 있다.
오늘 밤과 새벽 사이에 국회 직원들과 국회의원, 국회의장은 불안과 초조함을 느끼며 국회를 뜬 눈으로 지킬 것이다. 이미 국회의 구성원들은, 일부 국민의힘 당직자들과 의원들을 제외하고는, 어쩌면 그들도, 대통령에 대한 신뢰를 모조리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상호간 신뢰를 잃어버리면 그 순간 그들을 묶어주던 체제라는 끈은 붕괴할 수 있다.
국회의장은 국민과 국회 구성원을 향해 일관적으로 신뢰를 잃지 않기를 권하면서, 동시에 가능한 모든 조치를 하나둘씩 취했고 탄핵소추안 표결을 하루 앞둔 오늘 밤을 대비하고 있다.
너른 분수대 광장과 잔디밭 위에는 군용 헬기가 착륙하지 못하도록 버스와 차량을 동원해 장애물을 군데군데 설치해두고 허가받지 않은 인원과 차량은 국회에 출입하지 못하도록 통제하고 있다.
오전 긴급하게 구성된 상임위원회 안팎에서 2차 계엄에 대한 군 내부의 증언이 새어나왔고, 단 하루 만에 12월 3일 밤에 있던 계엄 전후로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구체적인 지시사항들이, 그 지시를 받은 국정원, 군 고위간부들의 입을 통해 낱낱이 밝혀지고 있었다.
주요 상임위원회는 연달아 관련 고위 공무원들을 국회로 소환해 계엄이 만들어지고 이루어진 경위와 그 책임에 대해 캐묻고 추궁했으며, 이들이 내란죄를 저지른 윤석열을 감싸고 “부화뇌동”하지 않고 최대한 상황 판단을 빠르게 할 것을, 그래서 올바르게 처신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는 것을 나는 종일 의원실에서 TV를 통해 보았다.
오후인 지금, 국회에서는 사무처 전 직원을 대상으로 비상대기 지시가 내려져 있으며, 여전히 정문 밖에서는 구호 소리가 거세다.
기록 일이 밀려 야근을 하고 있는데 지역구 의원들이 사무실에 방문했다. 이들은 모두 지역구 사무실을 떠나 밤새 국회를 지키기 위해 이곳에 왔다.
밤늦도록 의원회관 내부는 어수선했다. 직원들은 곳곳에 무리를 짓고 서서 무슨 말인가를 주고 받으며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비해 준비하는 듯 보였다.
지하철이 끊기기 전에 회관을 나서 국회의사당역으로 내려갔다. 역사엔 벽면을 따라 삼삼오오 모여 저마다 방석과 자리를 깔고 앉아, 그들 역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지상에 이는 찬바람을 피해 이곳 지하에서 상황을 주시하다가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득달같이 달려 올라가 국회에 침입하려는 이들을 저지하려는 사람들 같았다. 위에는 국회 직원들이 아래에는 시민들이 대기조를 자청하고 들어앉아 있는 셈이었다. 털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패딩 조끼에 패딩, 두껍게 두른 목도리, 기모 장화, 충전기, 담요, 방석, 귤이나 김밥과 같은 요깃거리도 하나씩 꺼내어 놓고 야금야금 나눠먹는 여자들도 보였다. 수면 잠옷을 입은 채 발목을 드러내놓고 상체는 검은 패딩에 파묻혀 잠을 자는 소년의 꽉 쥔 주먹에는 붉은 색의 ‘내란죄 윤석열 퇴진’이라는 문구가 새겨진-아마 집회에서 배부한 것으로 보이는-손피켓이 놓여 있었다. 이미 코와 볼이 붉게 얼어서 집회가 열리고 있는 국회 앞 교차로에서 내려오는 학생들도 보였는데, 이들은 언뜻 보더라도 꽤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휠체어를 끄는 사람, 웃는 사람, 자는 사람, 이 사이에, 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 몸이 불편해 휠체어에 의탁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고 아직 똑바로 걷는 사람 사이, 나이가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 외국인과 내국인 사이에 어떤 차별이나 구별이 보이지 않았다. 오직 이들의 신뢰가 이곳 국회 지하에 모여 있었다.
얼마 전 국회박물관 전시에서 보았던 임시의정원 초기 의원들이 상해 한 곳에 모여 법 조문 한 문장 한 문장을 기초할 때, 마음껏 그 자리에서 함께 상상하고, 충분히 행복해하며 ‘민주공화국’이라 새겼던 것, ‘균등’ 혹은 ‘평등’이라 썼던 것들이 이들의 신뢰 위에 겹쳐 보였다. 그런데 계엄과 그에 관여한 고위 관료들, 윤석열이 주구장창 주장하는 “자유민주주의”는, 이상민이 “계엄은 고도의 통치기술”이라 할 때의 “고도의 통치기술”은 어디에서 온 말들일까?
이 모든 말들은 그 말들의 뜻을 함께 규명해가면서 그들과 함께 영영 박제되어야 할 것이다.

2024.12.08

한강의 노벨상 수상 연설을 보았다. 한강은 자신이 <소년이 온다>를 쓰기 위해-광주를 정면으로 다루는 소설을 쓰겠다고 결심한 뒤- 광주 학살과 관련된 900쪽짜리 구술집은 물론 전 세계에서 보고된 학살 사건과 관련된 기록들을 읽으면서-특히 최후의 항전 직전 YMCA에 남아있다가 계엄군에 의해 사살된 앳된 야학 교사 박용주의 일기를 읽으면서-, 작가가 20대 중반부터 일기의 표지마다 적어두던 두 개의 질문
현재는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이 뒤집혀 제기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말이다.
과거는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감은 눈꺼풀 위로 우글거리는 햇빛과 같은 혼들이, 말 그대로 현재로 도래한다는 것은 그가 <소년이 온다>를 쓰는 동안에 그녀의 곁에 끈질기게 머물던 감각이었다.
변화하는 현재에 대해서 무얼 더 말할 수 있나. 덧없이 생겼다 사라지는, 사람들의 시각을 사로잡고 주목을 끌다가 다시 사라지는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서.
그 안에서
누군가의 말과 마음을 대신한다는 것은 불가한 것이 아닌가.
오히려 한 사람의 말과 마음이 다른 사람의 말과 마음으로 이어지는 것 아닌가. 그런 때가, 오늘의 한강이 연설의 제목으로 지은 ‘빛과 실’처럼, 사랑이라 일컬을 수 있는 ‘인간으로의 돌아옴’이 아닌가.
최근의 일들을 기록하는 것-개인적으로 내게 있어, 그것은 단지 르포가 아니다. 내 안에 무엇이 남았는지. 오롯이 내가 가진 감각과 의식의 힘으로 써나가는 것에 가깝다. 따라서 이 글은 언론이라 할 수 없다. 단지 한 대학원 동기가 내게 제안한 대로, ‘수기’일 뿐이다.
어제는 무슨 일이 있었나. 되풀이해 자문해야 한다. 나는 국회의사당에서 표결이 시작되기 직전부터 여의도 공원 집회가 열리고 있는 여의도 공원 한복판, 인파들로 가득한 곳에서부터 국회쪽으로 국회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새 휘날리는 깃발 아래로 좁은 통로에 튀어나온 날카로운 쇳조각으로 인해 몇몇 사람들의 찢긴 롱패딩 틈으로 희고 가벼운 깃털들이 하늘하늘 날리기도 했다. 나는 계속해서 나아가 주최 측이 마련한 거대한 전광판과 엠프가 세워진 무대를 지나 국회를 두르고 길게 뻗은 여의대로를 가득 메운 인파에 이르렀다. 국회로 가겠다고 마음속으로 결정하긴 했지만, 인파가 자리를 잡고 앉아 빼곡히 대로를 메운 탓에 난 거의 패닉 상태에 빠질 지경이었다. 과도하게 밀집한 사람들로 만들어진 이 기이한 미로 속에서 눈앞에 국회를 두고도 나아갈 방향을 찾지 못하고 막막한 심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결국, 국회 서편으로 인파의 행렬에 떠밀리듯 돌아가기로 했다. 앞뒤에 사람들은 서로를 붙잡고, 괜찮을까, 이렇게 병목되는 이유는 중간에 멈춰서는 사람 때문이야, 앞에는 공간이 있을 거야, 서로 다독이고 설명해주는 여학생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한참을 떠밀린 뒤에야 겨우 여의대로를 건너 국회로 들어올 수 있었다.

2024.12.11

이런 사람도 있었다. 국회 정문 밖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목청껏 부르며 힘내십시오! 대통령님을 응원합니다! 하고 소리치던 남자. 나는 추위를 뚫고 의원회관 사무실로 돌아와 그래, 다양한 사람이 있구나 하고 생각했고, 금세 그 사실을 잊어버렸다.
그 날이 언제였지.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사무실에 앉아 눈으론 모니터 위로 떠오르는 이미지와 글자들을 주시하고 두 손으로는 빠르게 키보드를 두들기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생각했다.
그 날에 대해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와 씻지도 않은 채로 책상 앞에 앉아 기록을 위해 펜을 든다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인가?
그날 12월 7일은 집회를 기록하기 위해 여의도 광장을 찾았다가, 유독 추운 날씨 때문인지 스마트폰 전원이 꺼지는 바람에 충전기를 두고 온 의원회관으로 들어가 스마트폰을 충전하며 상황을 더 주시하기로 결정했을 때였다. 아직 오후 5시에 예정된 본회의가 열리기 전이고, 본회의가 열리고 표결이 시작되면, 그 이후도 여전히 기록해야 할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떻게 거대한 인파가 층층이 들어앉아 있는 여의대로를 건널 수 있는지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의원회관 의원실에 들어와 꺼진 스마트폰을 충전해두고 TV를 틀자 뉴스에서는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이 탄핵소추안 표결에 불참 결정을 내렸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었다. 김건희 특검법 표결이 이루어진 직후 이미 본회의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TV를 끄고 짐을 챙긴 뒤 본회의장이 있는 국회 본청으로 잰걸음으로 가 곧바로 여러 대 검은 카니발을 지나 국회의사당 로텐더홀로 들어섰다. 본회의장과 맞닿아있어 높은 층고와 빛을 뿜는 샹들리에 아래 이미 많은 국회 당직자들과 외신기자를 비롯한 기자들 등이 곳곳에 삼삼오오 모여 앉거나 서 있는 채로 진을 치고 있었다. 구역마다 각 당이 마련한 것으로 보이는 기자회견을 위한 배경 설치물이 보였다. 본회의장으로 통하는 입구마다 삼각대 위에 고정된 팔뚝 만한 카메라들이 각각 언론사 로고와 함께 서있었고, 의원들이 본회의장을 빠져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불현듯 소란스럽고, 무언가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던 쪽은 계단을 올라 3층 카페를 따라서 난 좌측 복도였는데, 이미 민주당 당직자들을 중심으로 가득 몰려있었다. 그 앞엔 역시 본회의장으로 통하는 입구가 있었다.
곧 소란과 함께 그곳에 몰려있던 이들에게서 탄식과 고함, 구호소리가 들렸고, 이내 로비에 있던 당직자들과 기자들 역시 이곳으로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더 혼비백산이 되었다. 이들은 본회의장을 빠져나가는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을 향해 다시 들어가서 표결에 참여하라고 구호에 맞춰 외쳤고, 종종 부역자! 책임져! 역사에 부끄러운 짓을 하지 마! 라는 외침이 들렸다. 이윽고 곳곳에서 터져 나오던 탄식과 같은 고함들은 흩어졌다가 다시 일제히 투정한 구호와 함께 뭉쳐서, 한동안 선창과 후창이 번갈아가며 계속되었다. 눈앞에 의원이 보이지 않으면 잠잠해졌다가 다시 보이면 들불처럼 일어나 다시 하나의 구호를 이루는 방식이 반복되었는데, 의원들이 모조리 빠져나갈 때까지 그랬다. 모든 구호는 그 자리에 있던 누군가가 마음에 따라 외치는 선창에 의해 이루어졌다. 대개 선창보다는 후창에 더 많은 이들의 목소리가 참여했고, 선창은 그곳에 있던 사람들의 기지에 의해 매번 바뀌었다. 앞선 사람들은 구호 사이사이에 분을 이기지 못해 욕을 뱉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뒷사람이 ‘욕은 하지말자’고 제지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어떤 표정을 지으며 재빨리 엘리베이터로 계단으로 피신했을까? 나는 이들의 등과 뒤통수에 가려 그들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이곳 이 사람들 뒤에는 여의대로와 여의도공원을 가득 채운 시민들이, 연일 탄핵안이 가결되기를 염원하며 추위를 버티고 있었다.
무엇을 기록할 수 있는가, 무엇을 기록해야 하는가.
이미 많은 정보가 하루가 다르게 수많은 매체를 통해 퍼날라지고 있다. 국회에서는 정보위원회, 국방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를 중심으로 계엄과 관련된 자들을 불러 관련 경과를 질의하고 책임을 물으며, 진상을 규명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여러 국무위원의 입을 통해 비상계엄이 내려지고 이행되기까지 전후 경과에 대한 조각들이 하나둘 그 퍼즐을 맞춰가고 있다.
아, 이미 많은 시간이 흘렀고, 이제는 검찰, 경찰(국가수사본부), 공수처에 이어 국회까지, 의장에 의해 국정조사권을 발동한 만큼, 여러 주체에 의해 책임 소재와 구체적인 혐의에 대한 수사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그 사이 여당인 국민의힘 대표와 국무총리가 정국을 책임질 것을 시사하는 공동 기자회견이 열렸고, 이 또한 헌법에 적시되지 않은 위헌적 발상이라는 비판이 이어 쏟아졌다.
게다가 오늘 열린 본회의(긴급현안질의)에 참석한 국무의원으로부터, 계엄에 앞서 개최된 국무회의가 단 5분간 이루어졌으며, 대통령의 독선적이고 고압적인 태도로, 이 모든 걸 스스로 결정했다고 통고한 탓에 회의 자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이 모든 말들은 하나같이, 칼과 총과 같은 폭력성을 품고 있다. 이들이 증언해내는 기억 속의 한 인물의 말, 특히 ‘자유민주주의’나 ‘통치’, ‘국가’와 같은 이번 계엄령을 주도한 몇몇 이들의 말들은, 그 안에서라면 이미 많은 이들이 갈증에 허덕이고 굶주리게 되는 각박한 세계에 속해 있다. 그 안은 가난한 나의 세계보다 더 가난하고 메말라서 그 안에는 단지 언어라는 껍질 밖에는-그러니까 단지 개인의 욕망밖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세계이다. 그 단어들에 무엇이 남아있는가. 후대에 물려줄 만한 어떠한 유산이 남아있는가.
시간이 지속될 수록 말과 말들 판단과 판단들의 여전히 위태로운 줄다리기에 우리는 매달리고 있다. 우리의 판단은 무엇에 기대는가?

2024.12.13

그날 토요일에 대해 생각한다. 노량진역은 이미 여의도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지하철을 타려는 인파로 북적였다. 뒤에서 내게 가방 문이 열려있다고 알려준 아이 아빠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몰려든 이들로 직원과 경찰의 통제를 받고 질서 있게 기다리던 중에 자신의 무릎보다 살짝 높은 키의 어린 남매에게 저녁에 먹을 이런저런 메뉴들을 들려주며 지루해하지 않게 했고, 끊임없이 안전에 대해 당부하고 있었다. 엄마 아빠 손 꼭 잡고 있어야 해. 꼭 붙어있어야 해. 아이들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지하철 승강장으로 내려갔을 때는 이미, 방송으로 여의도 집회에 따른 승객 폭주로 인해 여의도와 국회의사당역에 무정차 운행을 한다는 안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떤 남자는 한숨을 쉬었고, 아마도 미리 여의도에 도착해있을 다른 이에게 급히 전화를 걸기도 했다.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굴리며 이미 집회 시간이 지난 마당에 갈 수는 있는지 염려하는 표정이 가득했다. 한 젊은 여자가 가득 찬 객실의 열차들을 속절없이 보내면서도, 그 안의 승객들에게 명랑한 목소리로 다음 역인 당산에서 여의도까지 걸어서 36분 정도가 걸린다고 안내해주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 여자는 9호선 급행을 탄 이들에게 여의도로 향하는 길을 밝혀주고 있었다.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곳으로 도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해할 때마다 사람들이 서로 돕고 일어나 서로의 길을 밝혀주고 있다. 어제(6일) 9호선 역내의 사람들도 그렇다. 사람들은 벽에 기대앉아 밤을 꼬박 새울 요량으로, 마치 성문을 지키는 병사처럼 서 있거나 기대앉아 있었다. 이곳, 국회를 지키기 위해서일까. 무엇으로부터? 계엄령과 계엄군으로부터? 한 지도자의 광기로부터?

2024.12.14

정보와 기록은 어떻게 다른가. 단시간에 전달되지 않으면 휘발되는 정보의 가치와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의미를 띠게 되는 증거성을 비롯한 기록의 가치는 어떻게 다른가. 기록은 언제 그 조건을 갖추며 어떻게 기록으로 거듭나는가.

2024.12.15

우리의 행동이 과거에 비추어 떳떳한가.
지금 우리의 판단을 돕는 것, 오직 과거뿐이다.
탄핵소추안이 다시 상정되었다. 본회의가 지난 토요일인 12월 14일, 바로 어제 열렸고 1차 표결 때와는 달리 300명의 국회의원이 모두 표결에 참여했다. 결과는 찬성 204표. 가결이었다.
나는 국회로 나서는 길에 보았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특히 9호선 급행 지하철을 타고 당산으로 향할 때-그 전날 국회의사당역으로부터 집으로 돌아올 때 전철 안에서 들었던 윤석열을 탄핵하라, 라는 앳된 여자들의 구호 소리만큼-, 아니 당산역에 막 내렸을 때 대여섯 명의 경찰 제복을 입은 남자들이 작은 몸 하나를 부축한 채 두 명의 여자를 에워싸고 있었다. 붐비는 승객의 행렬에 끼어 전진하지도 후퇴하지도 못하면서, 진중하게 방안을 논의하고 있었다. 경찰들에게 에워싸인 이는 발달장애인인 것처럼 보였고, 그의 어머니로 보이는 중년 여자가 승객들에 의해 밀리고 잡아채어 거의 넘어질 뻔하면서 비명이 터져 나오기도 했는데, 다행히 경찰들의 도움으로 혼란에서 막 벗어났을 때였다. 이들은 누구보다 강한 의지로 국회의사당역, 그리고 여의도역 위 여의도 공원에서 열리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 집회에 참여하고자 했다. 운집한 인파 사이사이에 막 막함과 절망에 사로잡혀 얼굴 가득 눈살 찌푸린 채 전동휠체어를 타고 있던 다른 장애인-노랑진역에서 보았던-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들의 집념, 혹은 막막함이 내가 집회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였다.
이날은 또 그날은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내가 보았던 것은 무엇일까? 그날, 바로 어제 국회본청 로텐더홀에서 표결 결과를 어수선한 상태로 마음 졸이며 기다리던 이들에게서 어떤 기운을 느꼈을까. 그들에게는 여전히 선택권이, 또는 어떤 희망이, 꿈틀거리는 힘이 느껴졌다고 할 수 있을까. 기도하는 손, 표결 결과에 대한 냉소 어린 예측, 그리고 표결 결과가 국회의장의 목소리를 타고 발표되는 순간에 터져 나오던 함성, 이 함성은 근래의 강행군과 같던 나날로 인해 두 눈꺼풀을 붙이고 졸던 한 당직자의 눈을 뜨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다시 부산하게 대기하던 외신기자를 향한 입장 발표와 인터뷰, 언론인들의 국회의원에 대한 인터뷰, 언론인들의 국회의원에 대한 인터뷰, 또 인터뷰와 입장 발표, 플래시가 폭죽처럼 눈부시게 터지는 빛과 그림자 속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한곳에 모여 다시 입장을 발표하고 다시 카메라를 향해서 고개를 깊게 숙인 후 이내 사라졌던 이 플래시 세례와 날카로운 셔터음 속에서, 나는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나오는 길에, 의사당 정문 너머 음악에 맞춰 너울거리는 온갖 색깔의 응원 봉에서 뿜어져 나와 어둠을 몰아내던 빛들이, 이들의 응원과 마음들의 지지가 뿜어내는 거대한 물결이 내 마음을 적시고 있었다. 국회의장은 이 빛들을 “꺼지지 않는 가장 단단한 빛”이라고 호명했다. 결국, 집회장을 가득 채우던 국회의장의 폐회사와 더불어, ‘다시 만난 세계’의 멜로디, 그리고 어쩌면 성장통일지 모를 그간의 슬픔과 작별한다는 가사 속에서, 마침내 터져 흐르던 맑은 환희의 울음들이, 아마도 그날에 있어, 마지막을 장식한, 한 권 책의 뒤표지 같은 이미지라 할 수 있을 것이다.